세운상가 샘플러 Sewoon Sampler

세운상가의 옛 술들
Seoul Gwarojoo

웨일즈

주종-위스키, 알콜도수-40%
"지금은 공원(세운초록띠공원)이 있는 종로 쪽 자리에 원래는 12층인가, 13층인가 하는 건물이 있었어요, 거기가 현대상가였어요, 밑에는 여기 대림상가처럼 상가들이 쭉 입주해있었고, 그 위에 고층에는 아파트가 있었어요. 60년말, 70년초 이때 서울에 엘레베이터있는 아파트가 별로 없어가지고, 돈 많은 사람들이 서로 입주할려고 했어요. 사람들이 거기를 ‘연예인 아파트’라고 불러가지고, 연예인들, 의사, 교수들이 많이 살고 그랬어요. 그 당시에 그 현대상가 저층에 삼촌이 운영하시던 텔레비젼 점포가 있었어요. 제가 거기서 배달일을 하면서 세운상가에 발을 들이게 된거에요. 그래서, 현대상가 고층으로 배달을 가끔 갔었어요. 처음에는 엘리베이터를 못타게 해가지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계단으로 오르락 내리락했어요. 그렇게해서 배달을 갔는데 어떤날은 거기 영화배우 누가 살고 있더라고, 거기서 텔레비젼도 설치하고, 또 전등도 좀 봐달라고 해서 이것저것 고쳐주고 그랬죠. 거기 잘 사는 고층 아파트 배달다니면서 후드달린 부엌도 처음봤고, 장식장에 양주 이렇게 주욱 차려놓은 것도 보고 그랬네요. 거기 사람들이 잘 마시는 양주가 있었는데, 그 초록색 각진 병에 담겨 있어가지고, 무슨 맛인지 궁금하더라고. 하여간, 고층에 있는 집마다 그게 한 병씩 있었던 것 같아요." (김OO, 57, 전자)

Seoul Gwarojoo

오간수

주종-막걸리, 알콜도수-5%
"세운상가에 있으면서, 전성기가 몇 번 있었는데, 80년대에 사람들이 최고로 많았네요. 지금은 상가복도가 재고 박스로 꽉 차있어도, 그때는 가전제품 구경꾼들로 꽉 차있었죠. 그때는 뭐 온라인도 없고, 카드도 없으니까, 다들 허리에다가 돈을 차고 이렇게 여기로 와야돼, 그러면 이제 복대에서 돈을 꺼내서 건네고, 물건 받고 했었지요. 그래서 뭐 돈을 더 줬니, 덜 줬니 싸우기도 했고 (웃음) 그렇게 다들 오셔가지고 종일 구경하다가 사고 그랬어요. 또 그때는 택배가 없었으니까, 가까운 데는 배달로 갖다주고 그랬는데, 그 복도에 온갖 사람들이 엉켜가지고 길이 막혀있으니까 인상쓰기도 했었는데, 차라리 그때가 바쁘고 좋았던 것 같네요. 그래서 하루종일 장사하고 배달다니고 하다가 상가층으로 내려왔을때, 복도가 조용하게 텅 비어있으면 한 밤 9시, 10시 이렇게 되있었네요. 그러면, 이제 박스 위에다가 쟁반 깔고, 여기 점포 사람들이랑 반주로 막걸리 두어 사발 하면서 늦게 저녁을 먹었던 거에요. 그때 자주먹던 막걸리가 ‘오간수’라고 있었어요, 지금은 어딜가도 없지만, 그때는 이 상가에서 그게 가장 흔한 술이었네요. 옛날에 청계천이 도로로 덮혀있을때 여기 상가변부터 해가지고, 동대문 지나서 광희문 쪽으로 흐르던 개천도 ‘오간수’라고 불렀어요. 나도 오간수 마시고 얼근해져 가지고, 그 ‘오간수’따라서 퇴근하고 그랬던 것 같네요. (차OO, 57, 개발)"

Seoul Gwarojoo

로빈후드

주종-분말알콜, 알콜도수-0%
"상가아파트 고층에서는 서울 야경보면서 양주를 마시고, 저층에서 일하는 우리들은 막걸리 마시고 그랬어요. 그 당시에 삼촌 가게에서 배달일하면서, 집집마다 가끔 수리도 하고 그랬는데, 왜냐하면, 이 수리 일손이 모자라니까, 출장가서 수리비가 나오면 삼촌이 전부다 저에게 주셨었는데… 점점 수리비로 받는 보수가 많아져서, 나중에는 맘먹고 독학으로 수리일을 배우기 시작했던거지요. 삼촌 가게 뿐만아니라, 여기 다른 가게들도 다 배달하는 친구들한테 수리비를 줘가지고, 그 친구들이랑 일끝나면 텔레비젼, 라디오 이런거 뜯어보면서 연습하고 그랬던겁니다. 또, 신제품이 나오면 이걸 수리하려고 몰래 하나 뜯고 분해해보기도 하고, 소문난 사장님한테 가서 물어보고 그랬단 말이죠. 그런데 마침 몇몇 선배님들께서 <국제테레비학교>라는 걸 만들었는데, 거기서 우리같은 친구들을 받아서 기술전수도 해주시고, 이것저것 진짜 많이 가르쳐 주셨어요. 내가 뒤늦게 정신이 들어가지고 가방끈이 짧았는데, 기술학교 선생님들이 많이 도와주셔가지고 그때 배운걸로 지금까지 먹고 사는거지요. 아, 최근에 우연하게 토크쇼에서 그 때 선생님 한 분을 본거에요. 그 분이 그 학교 2기생이셨고, 내가 270기 졸업했으니까, 증조, 고조할아버지시네요(웃음). 또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았었는데, 이제 ‘거기서 배운 기술로 이렇게 성장을 했습니다’하고 자랑도 하고 싶고 한데, 지금 다들 어디계신지… 그 기술학교가 저기 남대문로4가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건물은 있더라고. 당시에 라면이 한개에 15~20원 하던 1974년 즈음이었는데, 그때, 석유파동이 걸려가지고 집집마다 석유난로로 연명하고 했어요. 그 해 겨울에 춥기도 하고 해서, 그 기술학교 교실에 모여가지고 책상으로 이렇게 둘러가지고 그 복판에 담요 깔고 석유골로에서 라면 끓여서 먹으면서 기술배우고 그랬어요. 그때는 선생님들 수업말고는 수업자료가 별로 없으니까, 헌책방이나 세운상가 창고에 있는 옛날 회로도면을 보면서 공부했었어요. 하루는 친구가 신기한 도면을 하나 가져온 왔어요. 그게 ‘소주를 양주로 바꾸는 기계’의 도면이었던 거에요, 신기하더라고. 그래서, 진짜로 소주가 양주로 바뀌는 지 확인을 해보려고 저희끼리 모여서 만들어 보고 그랬어요. 그 시제품에다가 소주를 따르고 스위치를 누르면, 소주가 깔때기를 타고 흐르는데, 그 깔때기 끝에다가 코일을 감아서 소주에다가 발진주파수를 가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소주를 전기로 막 지지는 거지. 그러면 소주에서 기포가 막 올라옵니다. 이제 그걸 양주잔에다가 받아서 마셔보는거지요. 그러면, 진짜 맛이 좀 달라져있어요. 근데, 문제는 우리 중에 양주를 먹어본 친구가 별로 없어가지고, 이 술이 막 쓰고 이러니까, ‘아, 이게 양주가 맞네’ 이러면서 탄성을 지르고 그랬어요 (웃음) ‘소주를 양주로 만든다!’하면 사람들 귀가 번쩍 뜨이는 거야, 소주가 600원하고, 양주는 막 비싸니까 사람들이 관심을 갖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재미로 만들어 보다가, 나중에 그걸 소주에 타서 먹을 수 있게끔 분말형태로 만들어가지고, 진짜 출시까지 했었어요. (차OO, 57, 개발) "

Seoul Gwarojoo

감고주

주종-소주, 알콜도수-23%
"처음에는 화도 나고 그랬는데, 이제는 맘을 비워버렸어요.. 주로 중소기업이나 공장 운영하시는 분들이 여기 오시는데, 그게 제가 만들어준 제품에 문제가 있을 때 찾아오시는 거야. 이 분들은 사업이 잘되면 무소식이에요. 처음에는 미국에 실리콘밸리처럼 의기투합해가지고, 열정적으로 같이 개발을 하다가, 이제 기계가 나와서 조립해서 보내주면, 제가 그간 만들어놓은 모형이나 시제품 같은 거, 도면들을 싹 다 가져가더라고. 그리고 연락도 끊기고… 뭐, 내가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보낸 제품이 잘 작동하는지 안부물으려고 전화하는데도, 다들 그렇게 피하고 그러더라고…, 개발자에서 내 이름을 쏙 빼고, 특허내고, 시판하고 이러는 경우는 뭐 여기 사장들이 다 겪는 일이니까 그러려니 하겠는데, 다만 심적으로 좀 서운한게 없지 않지. 가끔 ‘아이디어 헌팅’하러 상가에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있어서 속상한 적이 간간히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사람들도 안보이고 말이야… 옆집 사장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다들 기술 배우는게 좋아서 여기서만 2~30년씩 버티고 있는거지, 돈 생각해서 하는 거였으면 벌써 다들 용산이나 강변으로 이전했지 않겠어? 여하간, 여기 계신 다른 사장님들하고 모여서 <손끝기술학교>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이 학교에 주로 젊은 학생들이 많이 오지. 내가 30년 넘게 모아온 도면 같은 것도 보여주고, 저만 알고있는 기술 같은 것도 알려주는 게 참 재미있다구. 가끔 그 학생들하고 수업끝나고 회식하면서 반주한잔 하는데, 그때마다 40년전에 남대문에서 기술 가르쳐주시던 선생님들하고 마시던 소주 생각이 나고 그러데…. 지금도 소주는 다양하지만, 그때는 도수도 더 높고, 향도 더 세고 그랬는데, 홍시 향이 나는 소주가 있었는데, 그걸 못본지가 오래 됐네요. (김OO, 52, 수리) "

Seoul Gwarojoo

송별주

주종-청주, 알콜도수-17%
"기억에 남는 발명품들이 몇개 있어요. 이를테면, 의공과 학생들이 부탁해서 만든 것중에 심장소리를 더 크게 들리게 해주는 의료기계도 있었고, 로보트 팔 같은 것들도 다양하게 만들어봤었고…, 그런데 특히 기억에 남는 분이 한분 있어요. 이 손님은 뭔가를 만들어 달라고 해서 찾아오셨다구요. 전직이 군인이었는데, 부대에서 헬리콥터를 조종하셨다는 거에요. 조종사로 10년이상 장기복무하고 전역을 하고 저한테 찾아와서는, 몇 년전에 자기 전우가 헬리콥터를 몰다가 떨어져서 죽었다고 하시더라고…, 근데 그 원인이 헬리콥터 꼬리날개가 떨어져나가서, 기체가 빙빙돌다가 추락을 해서 그런 변을 당했다는거야. 그 일때문에 상심이 너무 커서, 다시는 그런 인명피해가 나지 않도록 하는 예방장치를 의뢰를 하셨었어요. 그런데, 제가 헬리콥터를 타본 적이 있었어야 말이죠. 그래서 조금 난처하긴 했는데, 그래도 명색이 30년지기 기술자인데 도전도 해보고 싶고해서 의뢰를 받았어요. 혼자 책이랑 논문들 뒤지고, 견학다니고 하면서 개발해나간 거에요. 그래서 몇 달을 거기에 매달려가지고, 헬리콥터 꼬리날개 이상징후를 미리 감지해 알려주는 경보장치를 만들었어요. 이제 계기판에 이상징후가 감지되면 소리가 나서 조종사에게 알려주게 되요. 그 손님이 그걸 보시고는, 고맙다고 하면서, 그 친구생각이 많이 난다고 그러시더라고… 그 작업도 굉장히 오래된거 같네… 벌써 한 15년정도 지난 것 같아요. 그 이후에도 그 손님이 두어번 더 일을 맡겨주시더라고. 자동차에서 끓여먹을 수 있는 커피포트도 만들어 드린 적이 있어요. 드믈게도 그 분하고는 일을 하면서 회의를 많이 했는데, 그 분이 특이하게 청주를 또 좋아하셔가지고, 근처 식당에서 몇 잔 꺽으면서 개발했던 기억이 나네요. (김OO, 63, 통신기기) "

Seoul Gwarojoo

마닐라

주종-맥주, 알콜도수-7%
"여기 오래 있으면서 이런저런 일도 많이 겪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봤고, 80년대에는 올림픽이다 뭐다 해서 한창 손님이 몰려서, 어깨에 힘이 들어갈 정도로 벌이가 좋았더랬지.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 선배들까지 직원으로 두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초창기에는 텔레비젼이 귀해서, 그거 유통하고 수리하면서 돈 벌고, 또 나중에는 전축이 인기여서, 전축이랑 오디오시스템 몇년 운영했었고, 90년대에는 비디오, VHS 이런게 히트여서, 그걸 또 많이 들여와서 팔고, 수리하고 개발하면서 수십년이 그냥 지나갔네… 그때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한창 재미지게 장사했는데, 지나고 보니까, 제품마다 유행이 많이 짧았던 것 같아요. 나중에는 용산에 전자상가가 생겨서 손님들이 거기로 다 가버린 적도 있었고… 이 품종, 저 품종 다루다가 보니까 벌써 40년이 다 됐네(탄식).. 그때는 돈 좀 벌었다고 생각했는데, 바쁘게 돈 벌다 보니까 , 특허권이다 저작권 등록이다 계속 미루고 살았는데, 그게 좀 아쉽기도 하고… 예전에 경남에 내려갔다가, 거기 부산 친구들이 노래를 아주 재미나게 부르더라고, 그래서 서울 올라와서는 노래반주기를 만들어 봤었어요. 8트랙 시스템이라는 게 있어요. 이게 반주가 안 멈추고 계속 흘러나오는 기계에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노래방 시스템을 만든거지. 그 시스템을 만들때 상당히 재미가 있어가지고, 유행가 같은거를 틀어놓고 불러가면서 기계를 개발하고 그랬습니다. 지금이야 뭐 몇 층이 전부 노래방 기계를 다루지만, 그떄는 세운상가에서도 내가 거의 처음으로 노래방 기계를 시작했다고! 그때 여기 다른 대표님들도 다 신기해가지고, 기계만들고 있는데 가게로 만 들어와서는 노래 한곡 뽑고 가고 그랬어요 (웃음). 노래방 기계 개발하는데 너무 빠져 가지고, 집사람한테 막 혼쭐 좀 나고 그랬어요. 상가가 지금은 아홉시가 되면 문을 닫지만, 예전에서는 장사끝나면 여기 이 가게로 모여가지고, 주전부리며 맥주 한잔씩 하면서 노래부르고 퇴근하고 그랬었는데 말이지. 서울 노래방 1호가 여기라고. (이OO, 59, 음향기기) "

후기

<세운상가 샘플러>는 지난 30~40년간 세운상가를 터전으로 살아온 장인들의 회고담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서울의 1세대 기술자이자 사업가, 발명가이기도 한 분들의 실제 추억에 영감을 받아, 과거에 있었을 법한 6종의 가상의 술을 상상해본 짧은 픽션입니다.

"세운: 상태 연상 작용"(2018)

<세운상가 샘플러>는 "세운: 상태 연상 작용"(다시세운 프로젝트-1단계구간 주민공모사업 선정 프로젝트)에 게재되었습니다.

기획

김다은, 빠키

주최

서울시